

여기서 페미니즘에서 한동안 회자되었던 ‘혐오의 피라미드’ 이론을 복기해 보도록 하자. 현실의 소수자·약자에 대한 테러는 일상 속에 켜켜이 쌓인 혐오문화의 관행 위에 성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워마드의 사이버테러 역시 여성 커뮤니티에 만연한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과 차별의식을 뿌리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여성계의 트랜스젠더 혐오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경멸감을 드러내는 일은 해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실제로 줄리 빈델과 같은 페미니스트는 지난 2004년 <가디언>에 기고한 한 글에서 “남자들이 자기 성기를 잘라내는 것은 개의치 않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청바지 안에 진공청소기 호스를 집어넣는다고 해서 남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트랜스젠더를 야유한 바 있다.관련 기사<가디언> Gender benders, beware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차별의식은 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1970년대에 페미니스트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한 잰시 레이몬드 역시 “모든 트랜스젠더는 여성의 몸을 일개 인공물로 환원하고 여성의 몸을 착취한다”고 격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출처 <The Gender Games>).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를 여성연대를 교란하기 위한 가부장제 음모의 결과물로 해석하기도 한다.이러한 관행이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구글 검색을 통해 ‘트랜스 포비아 페미니즘’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해 보라. 지금도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블로그와 SNS 계정에 트랜스젠더에 대한 해외 페미니스트의 혐오스러운 언행들을 인용하며 트랜스젠더에 대한 반감과 혐오의식을 이론적으로, 지적으로 정당화하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다.여성계 내부의 소수자·약자 ‘포비아’를 돌아보아야지금도 수많은 자칭 페미니스트는 트랜스젠더들이 ‘본연의’ ‘올바르고’ ‘도덕적’인 여성성 그리고 여성의 신체를 희화화한다고 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들에 한해서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명제는 거짓이 아닐까.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페미니즘 일각이 드러내는 천박한 의식은, ‘가부장제’만이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본질화하고 성소수자를 탄압하며 주변화하는 유일한 주범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페미니스트 자신들의 이론적 거짓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들 스스로가 차별의식의 주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그들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로 들어와서 트랜스젠더들의 사진을 외부 사이트로 퍼 나르고 있습니다. 꽤 전에 봤는데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무도 그것으로 고소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거든요. 그 때문에 한동안 모든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신규회원을 받지 않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자기들 커뮤니티에 크로스드레서나 트랜스젠더 사진이 포함된 게시물을 복사해오는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올려서 비웃거나, 아니면 아예 관계없는 다른 카페로 퍼가기도 하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워마드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서 어디로 주로 퍼 날랐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다음카페 ‘취X뽀개기’에 퍼간 것을 실제로 확인했었습니다.
-<포비아 페미니즘>, 228~229페이지

물론 혐오의식에 기반을 둔 다수 페미니즘 지지자에게 벨 훅스는 전형적인 ‘쓰까페미’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자칭 페미니스트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와 반감의 대상은 트랜스젠더에만 그치지 않는다.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똥꼬충’ 등의 게이 혐오 발언이 만연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워마드의 ‘태일해’와 같은 산업재해 피해자 조롱 발언에서 엿보이듯이 빈곤남성과 약자에 대한 혐오 역시 활발하다.한편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계는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혐오’가 많은 사회문제와 범죄를 일으켰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보다시피 혐오와 차별의식의 문제는 특정 성별의 문제만은 아니다. 혐오문제에 대한 전 사회적인 자성을 요구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 스스로 내부에 만연해 있는 성소수자·약자 혐오를 돌아보고 자성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흑인 여성들이 많았다. 반남성적 태도는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데 정상적인 기반이 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반남성적 태도와 같은 증오심에 찬 감정표현은 여성과 남성 사이에 이미 존재했던 적개심을 증가시킴으로써 성차별을 강화했다고 그들은 확신했다.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는 서로 적이 아니다.”,?“우리는 자신을, 그리고 서로를 미워하도록 가르치는 사회화를 거부해야 한다.”?흑인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유대를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일종의 반인종주의 투쟁이었다.
-벨 훅스, <페미니즘: 주변에서 중심으로> 121페이지
경제학 석사. 프리랜서 작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2019, 공저), '포비아 페미니즘'(2017), '혐오의 미러링'(2016),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2014), '일베의 사상'(2013) 출간. '2014년 변신하는 리바이어던과 감정의 정치'로 창작과 비평 사회인문평론상 수상과 2016년 일본 '겐론'지 번역. wfvm@naver.com